20**년 *월 *일, 날씨: 미세먼지 없이 맑고 상쾌하지만 매우 추움
우리 반에 도벽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1학년 선생님이 자신의 교실에서 A가 물건을 가져가는 걸 봤다고 나한테 조심스레 말씀하셔서 알게 된 사실이다.
불과 일주일 전에 원어민 선생님 물건을 가져갔다가 들켰는데.. 그 때 분명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났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도벽일 줄은 미처 몰랐는데.. 하는 후회와 분노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A와 상담을 하니 그 동안 어디서 얼마나 물건을 가져갔는지 술술 자백(?)한다. 가뜩이나 조그만 학교인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잘도 물건을 가져갔다. ㅠ.ㅠ 다른 선생님들이 교실에서 자꾸 물건 없어지는 것 같다고 문단속을 잘하라고 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 선생님 교실에서 없어진 물건도 A가 가져갔네. 헐..
일주일 전에는 눈물 쏙 빼놓고 충분히 혼냈다고 생각해서 A의 어머니께는 말씀을 안드렸는데 이번에는 학교로 직접 오시도록 했다. '엄마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던 A의 간절함도 매몰차게 뿌리쳤다. 친구들에게 몰래 사과 편지를 적어 훔쳐간 물건과 함께 사물함에 넣어놨어도 아무렴.. 소용 없는 일이지.
결국 점심시간에 학교로 오신 A의 어머니.. 사실 A는 우즈베키스탄 아이이다. 우리나라에 온 지 1년이 채 안됐고 그나마 아버지는 비자문제 때문에 우즈벡에 다시 갔는데 코로나로 몇 달 째 입국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 구글 번역기로 러시아어-영어-한국어로 어찌어찌 상담을 했다. A의 어머니는 교실에서 잘못했다며 눈물을 한 바가지 쏟으시고 하소연도 하셨다. 주변에 친인척도 없는데 아빠마저 몇 달째 없어서 힘들다고.. 근데 A는 말도 안듣고 공부도 안하고 속만 썩인다고.. 자신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포항에 언니가 있는데 일을 그만두고 그리로 이사 가야하나 고민한다고..
A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낯선 한국에 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들게 일하는 어머니의 슬픔과 고단함이 느껴져 참 안타까웠다. '선생님 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못했다는 엄마의 모습에 아이의 마음도 무척 아프겠지?' 나는 오히려 A의 어머니에게 힘내시라고 A도 정신차리고 잘할거라고 위로드리고 집으로 보내드렸다.
'이제 A는 한동안 시무룩해져 있을테고 나는 그런 A를 안타깝게 바라볼테지만 그래도 잘못은 했으니 반성해야 하니 한동안 A를 매몰차게 대해야겠다.'고 다짐하던 순간.. 교실로 치킨이 배달되었다. '아차, 오늘 아이들에게 치킨파티를 한다고 했지.' A는 치킨도 제대로 못먹겠거니 은근 걱정하는 나. A는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맛있게 치킨을 먹고 있었다. 친구들과도 어쩜 저리 즐겁게 대화를 할 수 있는지.. 저 어마무시한 멘탈은 무엇인가? A를 바라보고 있는 나는 마음 속에서 깊은 빡침이 올라오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아직 우리에게는 함께 해야 할 많은 날들이 있지.'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나는 A를 바라보았다.
좋은 경험담 잘 읽었습니다. 아이가 도벽이 있을 뿐만 아니라 뻔뻔스런 면도 있는 듯 하여 무척 걱정이 됩니다. 아직 어린 나이에 도벽을 고칠 수 있도록 부모와 협력하여 아이를 훈계해야 할 텐데 쉽지는 않아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