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에는 절제가 없다. 파멸시키거나 파멸당하거나 둘 중 하나다. 어른 세계의 이같은 무정한 갈등 해결 방식이 어쩌다 아이들의 학교 현장에서 거침없이 이용되는걸까.
교사를 괴물로 만드는 것만큼 손쉬운 길이 또 없기 때문이다. 그걸 위해 '정서적 학대'라는 낯선 칼이 등장했다. 주호민도, 왕의 DNA 운운하는 교육부 공무원도, 여튼 선생 좀 쫓아내본 기술자들은 하나같이 '정서적 학대'를 휘둘렀다.
정서적
학대는 사실 한국사회에서 썩 익숙치 않은 개념이다. 초기 심리학에서 학대는 신체적 학대, 성적 학대 이 정도였다. 이후 개념규정이 넓어지다가 협박, 위협, 비하, 보살핌의 결여, 방임까지 늘어났다. 범위만 늘어난게 아니다. 학대 개념이 흐릿하고 한없이 모호해진게 더 문제다. 대표적인게 이놈의 '정서적 학대'다. 경미한걸 넘어서 모두가 헛갈릴 미묘한 행동들까지 싸잡아 학대로 부풀린다.
심리학에서 이런 식의 무분별한 개념 증폭을 ‘콘셉트 크립(concept creep)’이라고 한다. 엄정한 개념규정보단 무분별하고 극단적인 낙인찍기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주로 발생한다. 무슨 말만하면 반동이라고, 적폐라고 규정하던 시절의 말 습관이다.
결국 이런 식의 학대에 대한 개념확대는 교육자들에 대한 징계 가능성을 마구 부풀린다. 이젠 자녀의 학교 생활 중 불편함, 교사에게 듣는 꾸지람마저도 싸잡아 학대로 규정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소송을 걸고, 상대를 무너뜨리려 자기 불만, 불편, 불행을 과장한다. 언제든 소송을 걸 수 있는 가시 돋힌 학부모들에게 태연히 다가가고 말이라도 꺼내려 시도하는 교사는 없다. 단언컨데 없다.
절제 없는 시대, 악심이 극에 달한 시대, 뒤틀리고 이기적인 날들의 우울한 초상이다. / 배재희(특수교육)